증평의 발전전략에는 희망이 만들어가는 향이 있습니다. 미래를 열어가는 힘이 있습니다.
단군전과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 있는고장
증평리는 단군전과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3·1공원이 있는 고장으로 우리민족의 정기와 기개가 서린 고장이다.
지금의 증평읍 증평리 17번지는 일본인의 신사 터였었던 곳이자 우리민족의 시조 단군의 영정을 모신 단군전이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9년 일본인들이 자기들의 신사(神祠)를 세우고 참배할 것을 강요 하여 우리민족의 정기와 기개를 끊으려는 만행을 저질렀었다. 이후 16년간 신사참배를 강제 당하던 증평사람들은 1945년 8월 16일 해방 이튿날 증평의 청년들은 그 신사를 불태워 없애 일제의 만행에 응징하고 그 잔재를 지워버린다. 그후 3년가까이 지난 1948년 5월 27일 김기석(金箕錫 : 1897∼1978)씨 등 증평지역유지들이 홍익인간의 이념과 경천숭조사상(敬天崇祖思想)을 길러 민족정기를 바로세우기 위해 단군전(檀君殿)을 세우게 된다. 당시세운 단군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단군의 영정을 봉안하고 해마다 10월 3일 개천절(開天節)과 음력 3월 15일 어천절(御天節)에 증평지역 ‘단군봉찬회’ 주관으로 제향을 지내오고 있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1970년 지금의 증평보훈회관(구.노인회지회) 뒤편, 증평시가지가 바라다 보이는 높은 언덕에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공원을 조성하고 그 기념비(紀念卑)를 세워 매년 3월 1일 기념식을 갖고 있다.
이처럼 증평리는 단군전과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3·1공원이 있는 고장으로 우리민족의 정기와 기개가 서린 고장이다. 증평초등학교와 증평체육관, 증평도서관 등 교육시설과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는 증평리는 3개의 행정리로 나뉘어져 완만한 언덕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아직은 근대식주택이 많은 편이며 현대식주택과 아파트 연립 등으로 주거형태가 점차 현대화되어가는 추세이다.
증평리는 도심 인근에 위치해 있어 소규모 상가 시설과 자동차 정비사업소, 세차장, 전문 음식점 등이 주택가 곳곳에 눈에 띄는 주거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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