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
조선시대 금당은 청안과 사리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현재 마을이 들어서 있는 도로 가를 중심으로 고기집, 포목점, 주막 등 많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특히 금당서원이 있었기 때문에 마을에 진입하는 사람들 중 신분이 낮은 사람은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서 마을을 지나갔다고 한다. 이 마을이 당시 얼마나 번창하였는가는 70년대 말 도로공사를 하는데, 땅에서 수많은 주춧돌이 나왔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금당(金塘)이라는 지명이 암시하듯 이 마을에는 못이 하나 있었다. 옛적 이 마을에는 화재가 자주 발생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도사가 지나가면서 못을 파면 화재가 멎을 것이라고 하여 마을에 못을 팠는데 그 후로는 불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금당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난 듯하다. 못의 물이 많을 때에는 농업용으로 쓰기도 하였으나 물이 점점 메말라버려 쓸모 없게 되자 3년 전 마을 공사를 하면서 못을 메웠다고 한다. 그 못은 현재 마을회관(경로당) 우측에 있었던 것으로 못을 메우고 뚜껑을 덮어놓은 흔적만이 보일 뿐이다.
1997년 신축한 마을회관은 경로당을 겸하고 있어 마을의 노인 분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 건물 앞에는 그 옛날 방송도 확성기도 없던 시절 마을의 대소사를 알리기 위해 마련한 커다란 종이 있다. 그리고 옆에는 76년에 건립한 약 50평 가량의 새마을 창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