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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군

살기좋은 도안!!

풍요로운 도안. 활기넘치는 도안면은 평야와 산천이 조화롭게 발달한 살기 좋은 고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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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1리 마을 전경

환난상휼 광덕1리

곡산연씨 연민회에 의해 처음 이루어진 마을

마을서쪽에는 북쪽 백마령에서 발원한 문암천이 남쪽 보강천으로 흐르고 있다.마을의 앞쪽과 서쪽 개천을 끼고 기름진 논과 밭이 펼쳐져 있다.

구계마을

구계마을

도안면 소재지로부터 북쪽 약 2.5km 지점에 위치한 구계 마을은 행정구역상 광덕 1리에 속한다. 구계 마을 북쪽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 종지봉에서 시작한 산맥이 마을의 서쪽을 거쳐 두타산을 이루고, 종지봉으로부터 동남쪽으로 뻗은 능선은 백마령으로 낮아졌다가 음성군과 군계를 이루며 다시 남쪽으로 이어지면서 광덕리를 감싸는데 청광마을 뒤쪽에서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끝자락이 낮아지면서 구계 마을을 이룬다. 마을의 서쪽에는 북쪽 백마령에서 발원한 문암천이 남쪽 보강천으로 흐르고 있다. 마을의 앞쪽과 서쪽 개천을 끼고 기름진 논과 밭이 펼쳐져 있다.

마을의 동쪽으로는 덕암 마을이 있고, 남족에는 농공단지와 석곡 1구 산정 마을이 있고, 서쪽에는 청주 - 충주간 36번 국도와 충북선 철도가 지나간다.

북쪽으로는 음성군과 군계를 이루며 원남면 문암리 사오랑이 마을과 접한다.

마을에서 부르는 지명은 많지 않은데, 마을 앞 경주김씨 묘역 부근의 계곡은 구계골, 덕암고개는 장터골 등이다. 장터골을 덕암 마을에서는 서낭당이라 하여 같은 곳을 마을에 따라 달리 부르고 있다.

곡산연씨

곡산연씨

구계 마을은 곡산연씨 연민회에 의해 처음 마을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주 이전에도 약3~4호 정도의 곡산연씨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본격적인 마을의 형성은 연민회의 이주 이후이다. 1849년 봄에 구계 마을로 옮겨와 약방을 개원하여 주위의 어려운 사람을 돕고 의술을 베풀어 명성을 떨쳤던 분이다. 1885년에 태어난 손자 연일(延一)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가업이 계승되었다.

원래 곡산연씨의 세거지는 화성리 상작으로 지금 주민들의 고조·증조대에 구계로 많이 이주했다고 한다. 현재 구계 마을에는 안음공파·작달파·눌문파· 금당파 등 곡산연씨의 다양한 분파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 분파는 도안면의 곡산연씨 입향조 사직공(司直公)정(挺)의 여섯째, 일곱째 아들로 정복(定福)과 정원(定遠)에서 분파한 것이다.

마을에서는 분파에 관계없이 곡산연씨라는 공동체로 모두가 친척이라는 인식으로 사이좋게 살고 있다.

동계(洞契)

동계(洞契)

그리고 마을 이름도 시냇가에 거북이 많고, 마을 지형이 마치 거북이 시냇물을 보고 기어가는 것 같다 하여 거북 구(龜)자와 시내 계(溪)자로 구계라 개명하였다. 구계 마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는 바로 동계(洞契)이다. 연종철(延鍾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되었는데, 현재『동계좌목(洞契座目)』과『동계책수불부(洞契策收拂簿)』가 남아있다.

동계에는 각 가호 세대주가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으며, 『동계좌목』은 동계 입의(立의)와 계원 명부(名簿)인데, 계원의 입출계와 샘물, 자(字) 등이 기록되어 있다. 마치 호적대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빛 바랜 표지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어 이보다 앞선『동계좌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계 자금의 지출은 마을의 공동 농기구 및 비료, 세금 등에 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 보이는 격동기에도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도의 군사후원미(軍事後援米)와 1951년 이후의 응소자기념품대(應召者記念品代)는 한국 전쟁과 남북분단이 빚어낸 현상이다. 1986년 평화의 댐 성금은 당시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소를 자아내는 에피소드에 그친 사건으로 농촌에까지 현대 정치사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실제 동계 자금은 환난상휼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마을 주민 또는 인근 주민의 구휼에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보릿고개를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장리쌀을 많은 타지역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마을에서 장리쌀을 이용한 경우는 거의 보이지 않아 다른 마을에 비해 구계 마을은 비교적 윤택했던 것 같다.

원래 곡산연씨의 세거지는 화성리 상작으로 지금 주민들의 고조·증조대에 구계로 많이 이주했다고 한다. 현재 구계 마을에는 안음공파·작달파·눌문파· 금당파 등 곡산연씨 세계의 다양한 분파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 분파는 도안면의 곡산연씨 입향조 사직공(司直公)정(挺)의 여섯째, 일곱째 아들로 정복(定福)과 정원(定遠)에서 분파한 것이다. 마을에서는 분파에 관계없이 곡산연씨라는 공동체로 모두가 친척이라는 인식으로 사이좋게 살고 있다.

만세발원지

만세발원지

증평군 독립만세 발원지 기념 조형물

1919년 4월 10일 도안면 광덕리에서 오후 5시경부터 약 300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일제 경찰은 이를 총검으로 무력 탄압하여 1명의 순국자가 발생하엿다 3.1운동 백주년을 기념하여 2019.122. 증평군독립만세 발원지 기념 조형물 설치함

-국내 항일독립운동사적지 조사보고서(충청북도 독립운동 사적지)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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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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