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인의 충효와 학문을 길어온 삼기천(三岐天)
삼기천은 좌구산(座龜山)에서 발원하여 사곡교(射谷橋)에서 보강천(寶岡川)과 합류하기까지의 길이 16KM의 하천을 말한다.
이는 증평군에서 가장 긴 하천으로 수질이 좋고 주변경관이 수려하여 옛날부터 삼기천의 물을 먹고사는 사람들은 예(禮)와 학문(學文)에 밝고 이를 숭상하여온 인재가 많이 살아왔다. 이 하천의 이름은 마을마다 마을 이름을 따서 저수지밑까지를 삼기천, 죽리초등학교까지는 장천(長川,장내천), 사곡교까지는 증자천 또는 증천내로 불려왔지만, 대동지지(1865)와 증보문헌비고(1891)에 의하면 청안에서 서남쪽으로 5리에 있는 하천이 증자천(曾子川)이라 기록되어 있고, 청주에서 초현(초정고개)너머에 있는 하천이 증자천(曾子川)이라고 기록된 문헌상으로 보아서는, 삼기천의 최초 이름은 증자천(曾子川)이었다고 판단된다. 삼기천의 명명(命名) 은 1927년 조선총독부의 ‘조선하천령(朝鮮河川令)’을 작성 공포시 지역의 군소하천의 정리시 붙여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959년부터 1962년까지 삼기저수지(율리저수지)을 축조하면서 삼기리 마을이름에 따라 삼기천(三岐天)이라고 표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하천이 증자천으로 명명(命名)된 유래를 살펴보면, 옛 청안현 사마소의 선비들이 이 하천을 따라 주변에 사는 마을마다 효자효부들이 많이 탄생하고, 충절과 학문이 높은 조은(조은) 신경행(辛景行. 1547~1623), 지략과 예지력이 깊은 심곡(深谷) 김치(金緻. 1577~1625), 문장가이며 시인인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등과 같은 충, 예, 학문에 높은 인물들이 살았거나, 활동하여 온 곳이어서, 중국 공자의 제자중에 학문과 효행이 지극한 증자(曾子)의 이름을 붙여 증자천(曾子川)이라 명명(命名)한 것으로 짐작도니다. 이 하천의 하류에 있는 증천리(曾川里)마을 이름도 증자천(曾子川)의 가운데 자(子)를 빼어내고 증천리로 명명(命名)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삼기천의 상류인 율리에는 심곡 김치(金緻)와 백곡 김득신(金得臣)의 묘소가 있고, 물 따라 내려오다 보면 남차리(숯고개)에는 충청북도 지방기념물로 지정된 신경행 묘소가 있으며, 용강리에는 곡산연씨 열녀각과 장용기부부 정효각이 보존되어 있어 우리 증평이 충효예절의 고장이요 학문을 숭상하는 고장이라는 것을 확인해 줌으로 오늘날 증평에 살고 있는 증평군민들의 자긍심을 고양시키고 있다.
이 하천에 흐르는 물은 깨끗하고 알카리성과 탄산수가 함유되어 있는 약수의 이물을 먹고 자라온 사람들은 건장하였으나, 삼기(율리)저수지가 생기고, 근세 산업화에; 따라 주변에 물생산업체가 들어서고 축산농가의 폐기물과 무절제한 생활하수로 우리들 보고(寶庫)의 하천이 곤혹을 치르고 있어 안타깝다. 근대 산업화의 오염으로 죽고있는 삼기천을 되살려서 증평인들의 충효의 예절을 기르고 학문을 숭상하는 인재로 풍성하게 길러내던 옛 증자천으로 되돌아가기를 기원하며 하천의 이름도 증자천으로 되돌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