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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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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군의 명산 두타산(頭陀山)

두타산

두타산은 동·남쪽으로는 증평과 청주, 충남 조치원에 이르는 미호천평야, 증평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금강의 발원지로 도안면 노암리(벼루재)쪽으로 흐르는 연암천, 미암리(대지랭이)쪽에서 흐르는 자양천(紫陽川)의 발원지이다. 서·북쪽으로는 초평저수지, 원남 저수지의 발원지이며 진천평야와 시원하게 뻗어있는 중부고속도로가 보인다. 산세는 우리 증평쪽은 가파르나 진천방향에서는 완만하여 등산로가 잘 발달되어 있다. 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영수사, 원융사, 태화사, 보타사, 법천사, 연화사등 절과 암자들이 산재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적송들이, 동쪽으로는 침엽수가 많이 자라고 있고, 야생초로는 궝의비름, 낭아초, 조밥나물, 까치깨, 가는 기린초, 비수리 등이 자란다.

두타산의 유래는 중국 최고의 지리서적인 「산해경(山海經)의 해외동경(海外東經)편에 “칠년홍수 치산치수 단군신팽우(七年洪水 治山治水 檀君臣彭虞)”로 기록되어 있어, 지금으로부터 4,300년전 단군성조께서 나라를 다스릴 때 오랫동안 장마로 물난리를 겪을 무렵 이 지역도 평해(平海)로 변하니 백성들이 가장 높은 산으로 모여들어 수난을 피했다고 기록 되어 있다.

그 대홍수(大洪水)때 이 산의 산봉우리가 섬같이 보였다고 하여 머리 두(頭), 섬 타(陀)자를 따서 두타산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또한 많은 백성의 생명을 도와준 산이라 하여 일명 가리도(加利島)라 부르기도 한다. 당시 배가 진천과 증평 쪽을 넘나들던 고개를 “배넘어 고개”(증평읍 연탄리 마을소개에는 '배너미고개': 4300년전 7년 홍수로 물난리가 나 단군의 신하 팽우(彭優)가 치산치수를 할 때 배가 넘어 다녔다는 고개로 증평장을 보고 초평으로 가는 지름길로 소에 짐을 싣고 다니기도 했던 고개다.)라 하여 오늘날까지 부르고 있다. 두타산 정상에는 석성(石城)으로 된 두타산성이 있는데 산성의 둘레는 913m, 높이는 1.2m 폭은 2.7m로 남문과 동문지(東門址)가 있으며 남문지(南門址)의 외측에는 적 침투방위를 목적으로 축성된 두 곳의 토루(土壘)가 있다. 성내에는 삼국시대의 경질토기 조각과 통일신라 및 고구려시대의 토기조각이 발견되며 2개의 우물터가 있다. 두타산성은 신라장군 실죽(實竹)이 486년 이찬(伊湌)에 임명되어 백제군을 막기위하여 쌓았다는 설이 있으며, 실죽 장군은 보은의 삼년산성(三年山城)과 굴산성(屈山城)을 개축하기도 하고 살수지원(薩水之源)및 우산성(牛山城)전투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두타산 정상부근에는 상취(上娶)의 기(氣)가 있다하여 정상부근과 내려운 줄기의 대봉산, 왕기봉을 비롯한 곳곳에 명당을 찾아 뭍 묘(墓)들이 산재해 있다. 두타산은 우리 증평군에게 서북풍의 찬바람을 막아서 겨울에 따듯함을 주고 여름엔 비구름을 걸러주어 심한장마를 없게 해주는 천혜의 보물산이다. 증평의 사계절을 알려주는 화려한 경관과 역사의 자취를 보존하고 있는, 증평 땅에 상취(上娶)의 기(氣)를 안겨주는 명산(名山)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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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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