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精氣)가득한 대봉산(大峰山)
대봉산은 정기(精氣)가 가득히 흐르고 있는 우리 지역의 영산(靈山)이다. 송산리 송오리나 미암리 대지랭이에서 오를 수 있으나 경사가 급하여 오르고 내리는데 대단히 힘들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충청읍지에는 대봉산을 ‘금대야봉(金大也峯)’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이 산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금대야봉(金大也峯) 재현서십삼리(在縣西十三里)
이조두기(離祖斗起) 기고천장(基高千丈)
상유용천(上有湧川) 세한기즉필우(歲旱圻則必雨)
“금대야봉은 청안현에서 서쪽으로 13리의 위치에 있고 뾰족하게 툭 튀어 올라 남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높이는 천자(300m)이다. 정상에서 샘이 솟아 흐르고 가물이 드는 해에 기도를 하면 반드시 비가 온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농업이 주산업이었던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농수관리 시설의 불비로 그 해의 풍·흉년을 하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는데 비가 오지 않아 가뭄 들면 고을의 행정책임자(현감, 면장)가 대봉산에 올라가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므로 비가 내려 가뭄을 면하게 하고, 가을이면 풍년이 되었다고 고마움으로 이 산에 올라가 감사제를 올리기도 하였다. 또 이산에는 팔 대에 걸쳐 장군이 나온다는 명당 묏자리가 있는데 여기에 묘를 쓰게 되면 묘를 쓴 자손은 잘되나 마을에는 큰 변이 생기거나 오랜 가뭄이 온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1977년 7월에 증평뜰 들판에 곡식이 말라 죽어가고 논바닥이 갈라질 정도로 가뭄이 들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대봉산에 올라가 보니, 명당 터에 봉분도 없이 평장으로 암매장한 흔적을 보고, 마을사람들이 파묘를 하자 마자 먹구름이 몰려들면서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가뭄을 면하였다 한다. 후에 유골의 주인이 보은에 사는 이ㅇㅇ 씨로 판명되고 파묘로 인한 시시비비가 법정으로 번지기도 하였다 한다. 또한 이산에는 금이 매장되어 있는데 이를 캐거나 굴을 뚫게 되면 마을이 망하거나 행위자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고 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영산(靈山)이라는 것을 안 일본관리들이 이 대봉산의 정기와 혈을 끊기 위해 대봉산 줄기에 쇠못을 여러 곳에 박아 놓았다 한다. 대봉산은 증평군의 영산으로 우리 지역의 내력을 간직하고 증평군의 번영과 발전의 정기가 흐르는 명산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