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군의 옛 인류생활문화의 흔적이 깃들어 있는 연암천(硯岩川)
연암천은 두타산(頭陀山)과 종지봉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내려오다가 음성군 경계인 백마령에서 흐르는 실하천과 합류하여 도안삼거리의 보강천(寶岡川)에 이르기까지의 길이 약 8km 의 하천이다. 연암천의 명명(命名)은 도안면 노암리(老岩里)에서 벼루돌(硯石)이 채석(採石)된 연촌리(硯寸里)로 가는 벼루재 고개부터 물이 흘러내린다고 해서 벼루 연(硯)자와 바위 암(岩)자를 따서 연암천(硯岩川)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언제부터 연암천이라 불렸는지는 문헌상으로 찾아볼 수는 없다. 이 하천은 도안면지역의 중심부를 북·남동으로 흐르면서 연촌리 원남 저수지로부터 수로가 설치 전까지는 도안면지역에 농경지 경작의 유일한 수로(水路)였으며, 상류에는 두타산에서 흐르는 물을 담수하는 연암저수지와 종지봉에서 흐르는 물을 담수하는 송정저수지의 작은 2개 저수지가 있어 물로 인한 홍수피해와 가뭄의 해갈을 조절하고 있다. 송정저수지에서 2.5km 쯤 물길을 따라 내려오면 송정2리(통미. 칠송정리)마을 한가운데(김정수씨댁)에 선사시대의 유적인 남방식 고인돌(276x157x34cm)이 있고, 사기장골에는 지금도 엷은 회청색의 대접과 접시의 파편들이 출토되고 있는 분청사기 가마터가 있는데, 조선시대 때에 이곳에서 만들어진 분청사기가 중앙에 토산공물(土産公物)로 바쳐지기도 하였다 한다. 송정2리에서 1.5km 쯤 내려오면 송정3,4리가 있는데 이들 마을 이름이 흐르는 물가에 작은 정자가 있다고 하여 소강정, 강(江)줄기가 달같이 생기고 물이 맑아 물속에 달이 노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월강(月江)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일 정도로 연암천(硯岩川)은 100여년 이전까지만 하여도 하폭(河幅)도 넓고, 물이 맑으며 수량이 풍부하고 주변의 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인접하여 있는 땅들이 기름진 농토여서 부농이 많이 살았다 한다. <참고문헌 : 「호구총수」(1789년),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년)>
소강정(小江정)과 월강(月江)마을 아래에 있는 가무지(歌舞地:송정5리) 마을은 조선 고종32년(1895)에 청안현이 청안군으로 행정기구 개편이 되면서 북면(현 도안면)소재지가 되어 1941년까지 괴산군 도안면 소재지로 있을 때까지 술집과 음식점 등 유흥 상점들이 즐비하여 이근지역(청주, 음성, 괴산, 진천)사람들이 모여들어 춤과 노래를 즐기며 연암천에서 물놀이도 하는 위락의 안식처가 되었다 한다. 옛날 어느 병술년에 송정저수지가 터지도록 대홍수(大洪水)로 물난리가 나서 통미(통뫼 : 統山)의 산허리가 통째로 떠내려가 증평읍 사곡리 산621-1번지에 있는 통뫼산(統山)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설화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참고문헌:「증평의 뿌리를 찾아서」:2004년 6월, 130쪽> 이와 같이 연암천은 옛적부터 우리지역 어느 하천보다도 인류가 편안한 기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름진 농경지와 물 맑고 아름다운 경치가 수려하여 일찍부터 사람들이 생활터전을 이루게 됨으로 유구한 옛 문화 역사와 유적들이 어우러져 지금의 증평군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중심이 되고 있다. 지금의 연암천은 번성스러웠던 옛 흔적들이 자취를 감추어 가면서 작은 개울로 변하여 가고 있음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