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 김득신 찾아가는 김득신 문학길]
김득신 문학길은 율리삼거리에서 백곡 김득신(1604~1684)의 묘소에 이르는 짧은 구간이다. 삼거리에서 마을회관 앞 이정표가 가리키는 마을길로 들어서서 마을의 뒷산 언덕으로 오르면 백곡의 시비공원과 함께 그의 묘가 위치하고 있는 묘역에 이를 수 있다. 백곡의 아버지 김치가 이주하여 마을을 연 밤티는 백곡의 고향. 그의 사후 밤티마을 뒷산 구석산 자락 현재의 자리에 묘를 써 잠들었다.
백곡의 묘소는 아버지 김치의 묘 아래 비석과 동자석이 있는 묘이다. 묘의 서남쪽에는 그의 생애와 작품을 기리는 마음으로 시비공원이 마련되어 있다. 이 공원의 시비에는 백곡이 노래한 '율협'(栗峽·밤티골)이란 제목의 칠언율시가 새겨져 있다. 백곡의 묘에 서나 시비공원에 서나 한눈에 율리가 바라다 보인다.
백곡 김득신은 금방 배운 것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둔재였다. 백곡은 그런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공부해야 할 것은 읽고 또 읽어 마침내 자기 것으로 만들고 마는 노력파였다. 책 한권을 11만 3,000번이나 읽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그의 노력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시문이 뛰어나 조선효종이 극찬했고, 당대의 문장가들도 칭송했던 백곡은 그 노력 끝에서야 주옥같은 시문을 창작하는 천재가 된 것이다.
율리 삼거리에서 고샅길로 접어들어 뒷산으로 난 길을 이용하여 묘를 찾아 가는 동안 사마천의 사기 백이전을 11만 3,000번이나 읽은 것으로 유명한 백곡을 생각해 볼 일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대기만성형 인물이었음을 말이다.
- 문화재 안내
· 종 목 : 증평군 향토유적 제6호
· 지정일 : 2004. 4. 30
· 소재지 : 충북 증평군 증평읍 율리 산8-1
· 시 대 : 조선시대
· 내 용 :
백곡 김득신(1604~1684)은 조선중기의 대시인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자공, 호는 백곡 또는 구석산인이다. 진주목사 김시민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치의 아들이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가선대부에 올라 안풍군에 봉해졌고, 문보다는 시, 특히 오언절구를 잘지었다.
당대 한문 사대가인 이식으로부터 “그대의 시문이 당금의 제일”이라는 평을 들음으로써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한권의 책을 수만번 읽는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백이전을 억만번이나 읽었다하여 자기의 서재를 ‘억만재’라 하였다. 묘소에는 비문과 동자석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아버지 김치의 묘아래 안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