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증평읍사무소에서 36번 국도를 따라 충주 방면으로 1㎞ 쯤 가다 보면 미암교 앞에서 제방도로로 접어들어 사곡교에서 3번 군도를 따라 2㎞ 쯤 가면 사곡2리 사청마을에 닿는데 이 마을 한 가운데 있다.
사곡리 우물은 일명 말세우물로 전래되어오는 우물로 조선 세조시대에 가뭄이 극심하던 병자년(1456)여름, 길을 지나던 한 노승이 물을 청하자, 마을에 우물이 없어 저녁 늦게야 물을 한 그릇 떠 옴으로, 물을 마신 노승이 가엾이 여겨 지팡이로 앞에 있는 고목나무를 가리키며, “이곳에 우물을 파면 겨울엔 따뜻한 물, 여름엔 찬물을 얻을 것이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장마가 와도 넘치지 않을 것이외다.
그러나 이 우물이 세 번 넘칠 날이 있으니 넘칠 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일어날 것이니, 세 번째 넘치는 날에는 말세가 될 것이니 그때 이 마을을 떠나시오”라고는 노승은 홀연히 사라졌다. 반신반의 듣고 있던 마을장정들이 고목나무를 뽑아내고 땅을 파니 노승의 말대로 맑은 물이 솟아올라 마을우물로 사용했다. 그러던 중 1592년 정초에 우물이 처음으로 넘쳐서 그해 임진왜란이 있었고, 두 번째로 1910년 우물이 넘쳐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를 당했고, 그 후 1950년 6.25전쟁 때는 우물이 지면 1m 안까지 물이 불어나 전쟁발발을 예고했다한다.
1996년 5월 마을 사람들이 유래비를 세우고 2007년에는 우물을 원형으로 복원하고 우물이 세 번째 넘치지 않기를 매년 정초에 기원하고 있다.
사곡리 우물은 일명 말세우물로 전래되어오는 우물로 조선 세조시대에 가뭄이 극심하던 병자년(1456)여름, 길을 지나던 한 노승이 물을 청하자, 마을에 우물이 없어 저녁 늦게야 물을 한 그릇 떠 옴으로, 물을 마신 노승이 가엾이 여겨 지팡이로 앞에 있는 고목나무를 가리키며, “이곳에 우물을 파면 겨울엔 따뜻한 물, 여름엔 찬물을 얻을 것이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장마가 와도 넘치지 않을 것이외다.
그러나 이 우물이 세 번 넘칠 날이 있으니 넘칠 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일어날 것이니, 세 번째 넘치는 날에는 말세가 될 것이니 그때 이 마을을 떠나시오”라고는 노승은 홀연히 사라졌다. 반신반의 듣고 있던 마을장정들이 고목나무를 뽑아내고 땅을 파니 노승의 말대로 맑은 물이 솟아올라 마을우물로 사용했다. 그러던 중 1592년 정초에 우물이 처음으로 넘쳐서 그해 임진왜란이 있었고, 두 번째로 1910년 우물이 넘쳐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를 당했고, 그 후 1950년 6.25전쟁 때는 우물이 지면 1m 안까지 물이 불어나 전쟁발발을 예고했다한다.
1996년 5월 마을 사람들이 유래비를 세우고 2007년에는 우물을 원형으로 복원하고 우물이 세 번째 넘치지 않기를 매년 정초에 기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