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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6 14:10
김득신 인물소개(4)
- 문화관광과 | 음영학 | 043-835-4113
- 조회 : 279
- 등록일 : 2023-09-26
당대 최고 수준의 시인
선생의 시문은 당대의 수위(首位)를 다툴 정도로 출중했습니다.
1626년(23세) 무렵 공부를 그만두라고 했던 외숙 목서흠으로부터 시를 짓는 재주를 인정받는 걸 시작으로, 한문(漢文) 사대가로 유명한 택당(澤堂) 이식(李植)으로부터 ‘백곡의 문장이 당금제일이다’라는 극찬을 받기도 하였고, 조선 제17대 임금인 효종은 선생이 지은 ‘용호(龍湖)’를 두고 ‘당나라 시에 견줄만 하다’라고 칭찬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시능궁인(詩能窮人)은 시는 출중하나 궁색한 사람이라는 뜻의 말로 출중한 시창작 실력을 가지고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백곡 김득신 선생을 조롱하는 말이기도 하였습니다.
관직에 나가서 역시 ‘시에 빠져 일에는 소홀하다는 평가’로 지방 관직을 저지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선생의 시문은 당대의 수위(首位)를 다툴 정도로 출중했습니다.
1626년(23세) 무렵 공부를 그만두라고 했던 외숙 목서흠으로부터 시를 짓는 재주를 인정받는 걸 시작으로, 한문(漢文) 사대가로 유명한 택당(澤堂) 이식(李植)으로부터 ‘백곡의 문장이 당금제일이다’라는 극찬을 받기도 하였고, 조선 제17대 임금인 효종은 선생이 지은 ‘용호(龍湖)’를 두고 ‘당나라 시에 견줄만 하다’라고 칭찬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시능궁인(詩能窮人)은 시는 출중하나 궁색한 사람이라는 뜻의 말로 출중한 시창작 실력을 가지고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백곡 김득신 선생을 조롱하는 말이기도 하였습니다.
관직에 나가서 역시 ‘시에 빠져 일에는 소홀하다는 평가’로 지방 관직을 저지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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