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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군청 희망복지 담당 선생님 안녕하세요?
- 김* 철
- 조회 : 2456
- 등록일 : 2013-02-18
존경하는 복지과 희망지원 담당 선생님 안녕 하세요
저는 충북 증평애서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가장 아닌 가장인 김 형철 이란 경제 활동을 할 수도 없는 중증 장애인 아빠입니다.
제가 장애인이 된 것은 2005년도 얼마 안되는 수입 이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건빵노점을 하며 늘 ~ 쪼들리는 생활 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하면 세 아이들을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게 키울 수 있겠다는 마음 하나로 열심히 일했고 제가 노점을 하던 지역 사회 복지과에 액수로는 얼마 안 되는 포대건빵을 수차례에 걸처 어르신들 계시는 회관에 드리라고 복지과 선생님께 100포대씩 드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던 장사를 마치고 어느 날 집으로 귀가 하던 중에 마을 입구에 돌출된 철제 맨홀에 자동차 하부가 부딪히면서 저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깨어나 보니 병원 중환자실 이었습니다.
사고당시 부딪히는 충격으로 차 밖으로 튕겨져 나와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차는 논바닥에 널 부러져 있다고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심한 마음에 갈등을 겪어야 했고 그때 사고로 인하여 허리인공뼈를 8개를 넣고 고정 시켜야 했고 중추신경서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이 끊어져
한쪽다리 하지마비로 생활해야 했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통증으로 마약 진통제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통증과 번민으로 보네며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뿌연 안갯속 같은 저희 아이들의 미래와 또 저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며 좌절하고 번민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사고 후 생긴 불면증과 공황장애 무기력증에 음독을 8번이나 할 정도로 황폐화 되었습니다.
다행히 종교의 힘으로 간신히 몸을 추스렀을땐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집안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남은 것은 덩그라이 저를 바라보는 세 아이의 검은 눈동자뿐이었습니다.
더 이상 흔들리고 내 한 몸 아프다고 아이들을 방치 할 수 없기에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생활 하다가 이번에 연이은 교통사고로 목을 다쳐서 좌측 상지를 못 쓰게 되었습니다.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 했지만 그래도 현실이기에 받아드리고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독한 마약진통제를 복용 하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위쪽 어금니가 하나도 없기에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일일이 아픈 몸으로 죽을 쑤어 먹는 것도 한계가 있고 또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기에 너무 힘 들었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밥을 못 먹고 약을 먹으면 입으로 피가 나오는 각혈이 나고 밥을 앞으로 씹어 먹으면 소화가 안되서 위장 장애로 소화가 안 되서 그대로 나오고 진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약 진통제 약을 안 먹으면 칼로 뼈를 긁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고 난감 합니다.
텅 빈 골방에서 장애와 싸우는 이 힘없는 가장에게 이 추운 겨울에 뜨락에 내려앉는 포근한 햇살 같은 희망이 되어 주실 수 는 없으신가요
몸을 추슬러서 무엇이라도 할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희망을 주실 수는 없으신지 간절히 부탁 드려 봅니다.
아이들 에게도 제 힘으로 무엇이라도 땀 흘려 일해 싼 운동화 한 켤레 라도 사서 줄 수 있는 가장이 되길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희망 지원팀에 틀리 지원 을 요청 하게 되었고. 당시 하루라도 급한 상항이라서 전화로 횟수는 잘 모르겠으나 진행 사항을 여쭤 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희망 지 ; 원팀에 근무 하시는 선생님으로부터 말도 안 되는 인격 모독과 조롱을 당하는 언행을 듣고 고민고민 하다가, 칭찬 합시다 란에 글을 올렸으나 희망복지팀 에선 제 식구 감싸기 인지 그걸 부정하고 글을 내려 달라고 하더군요.
내용인즉 전화 통화 한분은 다른 분이신데 당시 전화받은 분은 저에게 난리를 첬다나 ? 옆에서 들었는데. 제가 너무 닦달한다. 구정 지나고 발표 난다고 해서 구정 다음날 전화 한 것인데 전화를 왜 자꾸 하느냐 라는둥 핀잔을 주었고 저는 심한 모멸감을 느끼며 전화를 끊고 집으로 와서 딸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빠께서 잘못도 없으면서 하라고 말 했습니다. 당시 이가 아파서 어금니 두 개와 송곳니 한 개 총 세 개를 뽑아서 제가 전화할 상항이 안되서 전화 하라고 했는데 제가 옆에서 들으니 딸이 사과드린다고 말하니까 그럴줄 알았다, 라는등 그런 말 로 민원인을 조롱하고 마치 아버지의 허물을 딸에게 말하는 투로 신경 쓰지 마세요 하며 전화를 끊기에 아무리 힘없고 경제 활동을 못하는 세 아이를 데리고 사는 장애인 아빠 경제활동과 거동도 힘든 중증 장애 아빠지만 담당 희망 지원팀 선생님께 딸에게 아버지의 잘못아닌 잘못을 지적하는 언행에 심한 모멸감과 자괴감마저 들었습니다.
틀니 지원 안해 주셔도 됩니다 이제 저 아이들 앞에 고개 들고 지넬 용기조차 그분이 뺏어 가셨기에 더 이상 살 의미가 없습니다.
복지 당당선생님과 수급자 장애인 가정의 가장과의 관계는 주종 관계가 아닙니다.
저희 같은 장애인 가정이 있기에 선생님들이 필요 한것이고 서로가 배려하고 어려운 사람 입장에서 업무를 수행 하시는것이 옳다고 사료됩니다.
저희 동생도 공무원입니다 제가 정화조 차를 운전하며 25년전에 육군 사관 학교를 다니던 뒷바라지 해준 동생 그 동생이 혼자의 진급을 위해서 이라크에 파병 나갔겠습니까 ? 공무원 행동 강령에도 나와 있는 국익을 위해 국민의 재산과 생명과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중령 계급장 달고 장교 로 이라크 전쟁터를 다녀왔을 겁니다.
제 삶은 이렇지 않은데. 민원인의 마음을 왜곡 하시는 담당 선생님 더 이상 틀니땜에 전화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수면제 아홉 봉지 먹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 오기전에 언른 써야 하는데.자꾸 시야가 흐려 지는군요.
진솔된 마음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복지 희망지원팀 선생님들과 소외가정 장애인 수급자 가정가장과의 관계는 주종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말 그데로의 희망을 심어주시는 선생님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2013.2.18. 충북 증평 송산에서 김형철
저는 충북 증평애서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가장 아닌 가장인 김 형철 이란 경제 활동을 할 수도 없는 중증 장애인 아빠입니다.
제가 장애인이 된 것은 2005년도 얼마 안되는 수입 이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건빵노점을 하며 늘 ~ 쪼들리는 생활 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하면 세 아이들을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게 키울 수 있겠다는 마음 하나로 열심히 일했고 제가 노점을 하던 지역 사회 복지과에 액수로는 얼마 안 되는 포대건빵을 수차례에 걸처 어르신들 계시는 회관에 드리라고 복지과 선생님께 100포대씩 드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던 장사를 마치고 어느 날 집으로 귀가 하던 중에 마을 입구에 돌출된 철제 맨홀에 자동차 하부가 부딪히면서 저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깨어나 보니 병원 중환자실 이었습니다.
사고당시 부딪히는 충격으로 차 밖으로 튕겨져 나와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차는 논바닥에 널 부러져 있다고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심한 마음에 갈등을 겪어야 했고 그때 사고로 인하여 허리인공뼈를 8개를 넣고 고정 시켜야 했고 중추신경서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이 끊어져
한쪽다리 하지마비로 생활해야 했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통증으로 마약 진통제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통증과 번민으로 보네며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뿌연 안갯속 같은 저희 아이들의 미래와 또 저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며 좌절하고 번민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사고 후 생긴 불면증과 공황장애 무기력증에 음독을 8번이나 할 정도로 황폐화 되었습니다.
다행히 종교의 힘으로 간신히 몸을 추스렀을땐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집안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남은 것은 덩그라이 저를 바라보는 세 아이의 검은 눈동자뿐이었습니다.
더 이상 흔들리고 내 한 몸 아프다고 아이들을 방치 할 수 없기에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생활 하다가 이번에 연이은 교통사고로 목을 다쳐서 좌측 상지를 못 쓰게 되었습니다.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 했지만 그래도 현실이기에 받아드리고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독한 마약진통제를 복용 하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위쪽 어금니가 하나도 없기에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일일이 아픈 몸으로 죽을 쑤어 먹는 것도 한계가 있고 또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기에 너무 힘 들었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밥을 못 먹고 약을 먹으면 입으로 피가 나오는 각혈이 나고 밥을 앞으로 씹어 먹으면 소화가 안되서 위장 장애로 소화가 안 되서 그대로 나오고 진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약 진통제 약을 안 먹으면 칼로 뼈를 긁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고 난감 합니다.
텅 빈 골방에서 장애와 싸우는 이 힘없는 가장에게 이 추운 겨울에 뜨락에 내려앉는 포근한 햇살 같은 희망이 되어 주실 수 는 없으신가요
몸을 추슬러서 무엇이라도 할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희망을 주실 수는 없으신지 간절히 부탁 드려 봅니다.
아이들 에게도 제 힘으로 무엇이라도 땀 흘려 일해 싼 운동화 한 켤레 라도 사서 줄 수 있는 가장이 되길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희망 지원팀에 틀리 지원 을 요청 하게 되었고. 당시 하루라도 급한 상항이라서 전화로 횟수는 잘 모르겠으나 진행 사항을 여쭤 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희망 지 ; 원팀에 근무 하시는 선생님으로부터 말도 안 되는 인격 모독과 조롱을 당하는 언행을 듣고 고민고민 하다가, 칭찬 합시다 란에 글을 올렸으나 희망복지팀 에선 제 식구 감싸기 인지 그걸 부정하고 글을 내려 달라고 하더군요.
내용인즉 전화 통화 한분은 다른 분이신데 당시 전화받은 분은 저에게 난리를 첬다나 ? 옆에서 들었는데. 제가 너무 닦달한다. 구정 지나고 발표 난다고 해서 구정 다음날 전화 한 것인데 전화를 왜 자꾸 하느냐 라는둥 핀잔을 주었고 저는 심한 모멸감을 느끼며 전화를 끊고 집으로 와서 딸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빠께서 잘못도 없으면서 하라고 말 했습니다. 당시 이가 아파서 어금니 두 개와 송곳니 한 개 총 세 개를 뽑아서 제가 전화할 상항이 안되서 전화 하라고 했는데 제가 옆에서 들으니 딸이 사과드린다고 말하니까 그럴줄 알았다, 라는등 그런 말 로 민원인을 조롱하고 마치 아버지의 허물을 딸에게 말하는 투로 신경 쓰지 마세요 하며 전화를 끊기에 아무리 힘없고 경제 활동을 못하는 세 아이를 데리고 사는 장애인 아빠 경제활동과 거동도 힘든 중증 장애 아빠지만 담당 희망 지원팀 선생님께 딸에게 아버지의 잘못아닌 잘못을 지적하는 언행에 심한 모멸감과 자괴감마저 들었습니다.
틀니 지원 안해 주셔도 됩니다 이제 저 아이들 앞에 고개 들고 지넬 용기조차 그분이 뺏어 가셨기에 더 이상 살 의미가 없습니다.
복지 당당선생님과 수급자 장애인 가정의 가장과의 관계는 주종 관계가 아닙니다.
저희 같은 장애인 가정이 있기에 선생님들이 필요 한것이고 서로가 배려하고 어려운 사람 입장에서 업무를 수행 하시는것이 옳다고 사료됩니다.
저희 동생도 공무원입니다 제가 정화조 차를 운전하며 25년전에 육군 사관 학교를 다니던 뒷바라지 해준 동생 그 동생이 혼자의 진급을 위해서 이라크에 파병 나갔겠습니까 ? 공무원 행동 강령에도 나와 있는 국익을 위해 국민의 재산과 생명과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중령 계급장 달고 장교 로 이라크 전쟁터를 다녀왔을 겁니다.
제 삶은 이렇지 않은데. 민원인의 마음을 왜곡 하시는 담당 선생님 더 이상 틀니땜에 전화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수면제 아홉 봉지 먹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 오기전에 언른 써야 하는데.자꾸 시야가 흐려 지는군요.
진솔된 마음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복지 희망지원팀 선생님들과 소외가정 장애인 수급자 가정가장과의 관계는 주종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말 그데로의 희망을 심어주시는 선생님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2013.2.18. 충북 증평 송산에서 김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