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리(楚中里)
우리마을의 역사(歷史)와 지명유래(知命由來)
본래 초중리(楚中里)는 조선시대 때 청주목(淸州牧) 산외이면(山外二面) 지역에 속해 있었으며, 건양(建陽) 원년(1895)에 청주군(淸州郡) 산외이면이 됐다.
1914년 일본제국주의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기존의 초중리에 같은 면(面)의 장촌리(墻村里), 금대리(琴臺里), 외장리(外墻里), 송정리(松亭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초중리라 했다. 광복 이후 초중리는 청원군 북이면(北二面)에 속했다가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괴산군 증평읍에 편입됐다.
1990년 12월 31일 충청북도조례 제1864호에 의거 괴산군 증평읍에서 충청북도 증평출장소(忠淸北道曾坪出張所)로 바뀔 때 초중리는 장평지소(莊坪支所)에 속하게 됐다. 2002년 1월 2일 주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지소의 관할구역을 변경할 때, 초중리는 장평지소에서 증천지소(曾川支所)로 바뀌었다.
2003년 8월 30일 법률 제6902호『증평군설치에 곤한법률』에 의거 증평군이 설치되어 증평읍 초중리가 됐다. 초중리는 영조 연간에 발간된『여지도서(輿地圖書)』청주목(淸州牧) 산외이면(山外二面)에 기록된 초성리(楚城里)가 초중리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성은 가시나무고개 또는 매고개로 해석이 된다. 아마도 잡목이 우거진 고개라하여 마을 이름이 유래된 것 같다.
토박이땅 이름
- 정안골 : 정안마을에서 청원군 북이면 금대리로 넘어가는 길목의 골짜기
- 둥구나무 : 초중2리(정안) 경로당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가리킨다. 둥구나무는 크고 오래된 정자나무를 의미한다.
- 수살메기 : 정안마을 녹색체험관 부근에 있는 나무로 수살막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살막이, 즉 수살(水殺)은 시골마을 어귀에 서 있는 돌이나 나무. 마을 지키는 신성한 것으로 믿어 전염병이 돌 때는 새끼줄을 쳐서 모시고, 개인이 병이 났을 때에는 환자의 옷을 걸어 놓기도 한다. 수사막이, 수살목이라 한다.
- 초족재 : 시가지 도로에서 정안마을로 가면서 충북선 철로 넘어가기 전에 있는 마을 주변으로 예전에 고갯길이었다고 한다.
- 시미방앗간 : NH한삼인 옆에 있었던 방앗간
- 증안골 방죽 : 무등산 광장 옆에 있는 방죽
- 참샘 : 무등산광장 앞의 증안골방죽 옆에 있다는 샘
- 퉁퉁굴 방죽 : 가장골 옆에 있는 방죽이다.
- 떼주막(거리) : 초중리에 인접한 청원군 북이면 옥수삼거리 일대. 주막의 담장이떼(잔디)로 됐다고 해서, 또는 주막이 여러채 떼로 모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