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천리(曾川里, 진지내)
우리마을의 역사(歷史)와 지명유래(知命由來)
증천리는 조선시대 청안현 근서면에 속했던 마을로 증평의‘증’자를 따올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 용강리와 경계를 이루며 그 사이로 삼기천이 흐른다.
현재의 증천리와 관련된 마을로는 증자천리(曾子川里)가 있었다. 증자천10) 옆(또는 앞)에 있는 동리라 하여 증자천리로 불리운 것 같다. 이 증자천리가 증천리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되며, 일명 진지내라고도 한다. 그 뒤 증천리는 건양(建陽) 원년(1895)에 청안현(淸安縣)이 청안군(淸安郡)으로 승격되면서청안군의 6개 면인 읍내면(邑內面), 동면(東面), 남면(南面), 북면(北面), 서면(西面), 근서면(近西面)중에서 근서면(近西面)에 속하는 지역이 됐다. 1914년 일본제국주의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근서면의 장평리(莊坪里), 삼성리(三省里), 안합리(安合里), 내상리(內上里), 평사리(坪沙里), 증천리(曾川里) 일부와 청안군(淸安郡) 남면(南面)의 금반리(金盤里), 둔덕리(屯德里)의 각 일부와 청주군(淸州郡) 산외이면(山外二面)의 초중리(楚中里) 일부를 병합하여 증천과 장평의 이름을 따서 증평리라 하여 괴산군(槐山郡) 증평면(曾坪面)에 편입됐다.
증천리는 광복 이후 1949년 8월 13일 대통령령 제156호에 의하여 증평면이 읍(邑)으로 승격되었을 때 괴산군 증평읍 증평리에 속했다.
증천리는 1966년 1월 1일 증평리가 증평리·교동리·중동리·대동리로 분동(分洞)될 때 중동리에 속했다. 1990년 12월 31일『지방자치법 제106조, 충청북도 조례 제1864호』에 의해 충청북도 증평출장소 설치에 따라 장평지소 중동리에 속한 행정마을에서 2002년 1월 2일 중동리에서 분동되어 법정리로되고 2003 년 8월 30일 증평군 설치로 증평읍에 속해 있다.
토박이땅 이름
- 진지내 : 증천리 행정 5개리 전체를 일컬으며 땅이 질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이름이다.
- 도드물들 : 여성회관 뒤편의 넓은 논을 가리킨다.
- 철다리 : 592번 지방도를 가로지르는 충북선 철도가 지나는 다리를 일컫는다.삼화당한약방 부근이다.
- 솔밭 : 진지내 일대가 예전에는 논과 밭이었는데 증천1리 경로당 주변에 소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 옹기굴 : 현 동우주택(쌍용석유) 자리에 옹기를 굽던 곳이다.
- 우시장 : 중동리 싸전마당 부근에서 이전해 증평중학교 앞 후생주택 옆에 있었다.